가끔씩 뉴스를 듣다 보면 싱크홀이란 단어를 듣게 된다. 모든 싱크홀의 원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지반이 약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파고 내려갈 때, 지상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면 붕괴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오늘은 내 감정과 싱크홀을 연결해보고 싶다.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지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때그때 나의 입에서는 다양한 대답이 튀어나온다. '외국 친구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니깐', '한국어만 사용하던 사람으로서 문장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그 특징에서 오는 색다른 맛이 있으니깐', '이국적인 느낌이 주는 신선함이 있으니깐' 등등 많은 대답을 해왔다. 사실 그래서 많은 욕심이 났다. 조금 더 잘하면 좋겠고, 조금 더 멋있게 쓰고 싶고, 한국어가 줄 수 없는 느낌을 더욱 받고 싶다 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어찌 보면 화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평생을 보낸 반도 작은 땅에서 이만 리 먼 타지에서의 첫 경험은 좋지 못했다. 말을 하고 듣는 것에 문제가 있어 여러 말들을 듣지 못하고 넘겨서 듣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굴하지 않으려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다음에는 못 듣는 게 있으면 꼭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다시 되물어봐야겠다.' '다음에는 내가 말한 것에 오류가 있다면 수정해달라고 해야겠다.' '이런 말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결코 현재에 멈춰있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등굣길 기차 안에서는 영어로 된 소설을 읽고, 영자 신문을 보면서 단어를 익히고, 내가 쓰는 말이 항상 맞는 표현인지 아니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지 말을 할 때마다 스스로를 교정해왔다. (그래서 한마디 할 때 10초가 걸릴 때도 있었다.) 발음이 안되면 억지로 입을 벌려보고 목소리를 낮춰도 보고, 말이 들리지 않다면 음악 대신 팟캐스트를 들었었다. 스스로가 어찌 보면 '더욱 완벽해야 해. 그래야 내가 지금 있는 이 타지에 나를 맞출 수 있어. 이곳에 맞지 않는 나의 특성은 모두 틀린 것이고 고쳐야만 해'라고 무의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터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굳게 믿던 마음이 스스로가 틀렸다고 계속되는 자책으로 긁어대면 당연히 온전할 리 없었다. 나도 모르는 새, 웬만한 한국인들 보단 잘한다는 그 자신감은 여기선 너무나 당연시하는 언어 하나 제대로 못하는 놈이란 죄악감으로 변질되었고,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그 감정은 내 자존심을 난도질했다. 다시 잘하면 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미 너무 커질 대로 커진 기대감을 내가 스스로 충족시키지 못할 때의 공허함은 그 무엇으로도 메꾸기 어려웠다. 그것은 나의 싱크홀이었다. 초반 스스로가 너무나 만족스러워하면서 조그마한 기대라는 이름의 모종삽으로 만들었던 터널을 파내려 가보니 나의 기대감은 어느새 굴착기가 되어 너무나 큰 구멍을 만들었지만, 나의 실력은 그 구멍을 메꾸기엔 너무나 부족하고 낮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마음은 터지고 말았다.
하루는 평범했다. 그저 달랐던 것이라면 영어권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돌아다닌 세계에서 만난 원어민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슬아슬한 내 자존심은 계속 깎여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 말이 혹시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냐는 질문에 (내가 말한 내용은 I have no idea why he knows that) 결국 그 싱크홀은 붕괴되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목이 메더니,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터져버린 수도관이 싱크홀 가득 물을 채우는 것처럼, 그 안에는 내 눈물만이 가득했다. 모든 이야기들이 듣고 싶지 않아 졌다. 그저 감정을 토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아 줬던 4개월의 감정을 구토하듯이 쏟아내려갔다. 모든 위로의 말들은 기만일 뿐이었다. '너만이 힘든 것이 아니다.', '나도 그런 경험 있어서 이해한다.' 난 그런 기만들에게 받아쳐주었다. '너희들은 결코 내 감정을 이해 못 해.' 그저 나의 조그마한 반항이었다.
그 뒤는 모르겠다. 그냥 그동안 나를 화나게 한 모든 존재에게 다 이야기를 했었던 거 같다. 솔직히 말하면 풀리지는 않았다. 천성이 이 모양이라 그런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최대한 유하고 부드럽게 노력하기 위한 스스로가 거슬렸고, 욕이라도 하면 좀 거칠어질까 했는데 입에도 맞지 않는 담배였다. 결국엔 내가 말한 불평에 상대방이 반박을 하니 내가 사과를 하는 호구 짓을 반복했다. 그냥 사과나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뭘 하고 싶은지는 잘은 모르겠다. 그냥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이 마음이 어떻게 해소가 되어야 할지도 잘은 모르겠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가장 합리적인 말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란 말이다. 그 순간만큼 이 말이 잔인할 수도 없는데 시간은 정말 그 상처를 무디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디어 믿음과 자신이 나에게 (1) | 2022.05.03 |
---|